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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도 나라 망치고 싶지 않겠지만...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건 '삽 한 자루'

오마이뉴스원문기사전송 2009-06-18 09:45

[오마이뉴스 진중권 기자]

여당 지지율은 야당에 추월당했고, 대통령 지지율도 20%대로 떨어졌다. 노무현 서거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싶을 게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여론에는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이 있다. 여론조사는 이 중 양적 측면만 반영할 뿐이다. 노무현 효과가 사라지면, 물론 정부여당의 지지율은 다소 오를 것이나, 그것으로 악화된 여론의 질까지 회복될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어 지난번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여론조사에서 10%P를 앞서고도 정작 선거에서는 외려 10%P의 차이로 패배했다. 우호세력의 지지는 소극적이나, 혐오세력의 반대는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게 여론의 질적 측면이다.


500만이 전직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것은 그저 노무현이라는 한 개인만을 추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국민들은 그의 죽음에서 동시에 우리 사회가 지난 10년간 이룩해온 민주주의의 죽음을 보았던 것이다. 서울대에서 시작된 시국선언은 나라 안팎으로 퍼져나간다. 전국의 교수들, 북미 대학 교수들, 각 대학 총학생회, 문화계와 법조계를 거쳐, 이제는 불교, 천주교, 개신교의 3대 종단까지 나섰다. 영화인들의 시국선언도 있었다. 지금 국민들은 표 하나 잘못 던진 것이 얼마나 섬뜩한 현실을 낳는지 학습하는 중이다. 국민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사회는 거대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다. 커뮤니케이션에는 일반적으로 '피드백' 기제가 있다. 사회에 문제가 생기면 위험신호를 되먹여 시스템을 교정하게 된다. 이 피드백이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을 '먹통'이라 부른다. MB 정권이 먹통의 대표적 예다. 한 번 단추를 잘못 채우면 줄줄이 잘못 채우게 되듯이, 먹통에 걸린 국가는 계속 잘못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국민은 MB 정권에 '대화와 소통'을 요구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MB 정권엔 그 능력이 없다. 21세기 네트워크 시대에 이런 불량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장착된 것 자체가 애초에 오류였다.


그 머릿속의 삽 한 자루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2007년 6월 22일 한반도 대운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뒤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 낙동강 하구에서 뻘을 삽으로 뜨고 있다.
ⓒ 윤성효

MB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라고 나라를 망치고 싶겠는가? 문제는 그의 두뇌 연령이다. 그는 고도의 IT 인프라를 갖춘 정보화 사회를 강제로 산업사회 초기로 되돌리려 한다. 그는 이른바 '성공한 CEO', 그 경력으로 당선된 자칭 '경제 대통령'이다. 문제는 그의 머릿속의 경제관념이 1970~80년대 공사현장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후 한국사회는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변신을 끝냈다. 한국경제도 그가 공사판을 뛰어다닐 때와는 아예 차원이 달라졌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골동품이 MB의 토목 마인드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산업화 초기에는 이른바 '엘리트들'이 역할을 한다. 멀찌감치 앞서나가는 선진공업국의 현재,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농민인 제 나라의 현실. 이 격차는 신속히 메워져야 한다. 그러려면 자연의 리듬에 맞춰 일하던 농민의 신체를 강제로 기계 속도에 적응한 노동자 신체로 뜯어고쳐야 한다. 이로써 온 국민을 위한 명령, 규율, 훈육 시스템이 도입된다. 산업화 초기의 독재는 정당성은 없어도, 최소한 적합성은 갖고 있다. 박정희 독재가 그나마 유지됐던 것은 그 때문일 게다. 그런데 우리의 '재판(再版) 박정희'는 아직도 국민이 그 시절에 산다고 믿는 모양이다.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를 모범으로 삼아 그는 국민 앞에 '경부대운하'라는 거대한 삽질 프로젝트를 내놨다. 다들 황당해 하자, '4대강 사업'이라 제목을 바꿔 달았다. 사업은 달라져도 예산은 동일하다. 14조. 무슨 일이 있어도 14조어치 삽질은 기어코 하고야 말겠다는 거다. '4대강'으로 이름을 바꿔달자 저항이 약해졌다. 그러자 갑자기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리하여 무려 22조. 앞으로 더 늘어날 거라 한다. '환경파괴' 걱정하니, 삽자루에 녹색 '뼁끼'를 칠하겠단다. 멀쩡한 강변 파헤쳐 '공구리'치고, 그 위로 아스팔트 발라 자전거 도로 건설하겠단다. 이게 그의 녹색 마인드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토목사업이 정말로 경제발전의 토대가 된다. 가령 중국이라면, 도로 깔고, 철도 깔고, 운하 파는 게 실제로 장기적인 경제적 효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는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다. 4대강 파헤치고, 자전거 도로 깐다고 무슨 경제 효과가 생길까? 삽질할 때에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용 노동직 외에 아무 효과도 없다. 혹시 부산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물류를 나르겠다는 건가? 이 정도면 '정책'이 아니라 '주책'인데, 문제는 도대체 이 주책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나 답답했던지, 한나라당의 이한구 의원이 보다 못해 한마디 한다.


"지금 재정이 엉망이고 전부 국가 부채로 하는 일인데, 미래 산업을 키우고 지속가능한 고용창출을 하는 데 투입해도 모자라는 판에 토목사업을 자꾸 확대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굉장히 신경 쓰인다." (평화방송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2009/06/11)


"현 세기에는 있을 수 없는" 정권


4대강 산업은 1970년대식 토목공사로 일시적 건설인력만 창출한다는 점에서 "미래 산업을 키우고 지속가능한 고용창출"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MB의 이 가공할 시대착오는 <조선일보>마저 우려할 정도다. 4대강 사업을 "꼭 해야 할 사업"이라 부르면서도 <조선일보>는 과연 그게 얼마나 절박한 과제인지 의문을 표명한다.


"과연 지금 22조 원이나 되는 국민 세금을 쏟아 부을 만큼 4대강 살리기가 절박한 것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더욱이 문제는 작년 말 14조 원이던 사업비가 6개월 만에 22조 원으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사업이 추진되면서 비용이 더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 환경영향평가는 계절별 영향을 보기 때문에 보통 1년은 한다. 4개월 영향평가로 충분한 환경대책이 마련될지도 걱정이다. … 불과 몇 달 사이 사업계획의 큰 틀이 이리저리 바뀌고 사업비가 수조 원씩 들쭉날쭉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어쩐지 아슬아슬하다." ('14조 원서 22조 원 된 4대강' <조선일보> 2009/06/08)


게다가 22조를 넘어 총액수가 얼마나 될지 헤아릴 수도 없는 초거대형 프로젝트의 계획이 몇 달 만에 뚝딱 만들어졌다. 이 초고속 날림공사 역시 1970년대 한국 토목공사의 전형적인 악습이다. MB는 4대강이 녹색 사업이라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얼마 전, 해외의 하천 전문가들이 참석한 4대강 관련 국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영국·독일·미국·일본 등 4개국에서 온 대학교수와 정책관료, 연구원들이 그들 나라의 하천 복원 경험담을 들려준 뒤 4대강 사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강 본류에 '보'라는 콘크리트 댐들을 줄줄이 쌓고 강바닥을 수심이 평균 6m 이상 되도록 준설한다는 4대강 사업의 내용이 소개되자, 이들은 모두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강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고 수질은 필연적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어 "현 세기에는 있을 수 없는 환경파괴 사업"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원영 수원대 교수 '대통령의 4대강 착각' <조선일보> 2009/06/11)


해외의 하천 전문가들은 모두 입을 모아 이 사업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사업에 22조 이상을 들이는 부조리극이 MB 정권이 추진하는 가장 큰 경제정책이다. "현 세기에는 있을 수 없는…"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그것은 동시에 MB 정권 전체를 특징짓는 말이다. MB 정권, 그것은 "현 세기에는 있을 수 없는" 정권이다.


하지만 MB의 선의를 의심하지 말라. 그는 정말로 한국경제를 살리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듣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의 머릿속에 도대체 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아는 처방대로, 자기가 잘하는 방식대로 경제를 살리려 한다.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면, 먼저 건설업이 살고, 고용이 창출되고, 그 연관효과로 지역경제가 살아난다.' 이게 그가 경제에 대해 가진 유일한 관념이다. 국민의 혈세 수십 조를 풀어 경기가 풀리면, 이제 그는 자신이 경제를 살렸다고 말할 것이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같은 무형의 가치와 달리, 토목공사의 결과는 청계천처럼 '사진발'도 잘 받는다.


MB의 근시안은 도대체 경기 살리기와 경제 살리기를 구별하지 못한다. 22조의 막대한 재원은 물론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게 아니다. 앞으로 경제에 뛰어들 다음 세대의 어깨 위에 언젠가 갚아야 할 빚으로 고스란히 남게 된다. 그렇게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서 고작 강바닥 헤집어 환경이나 파괴하고, 공사 끝나면 거품처럼 사라질 건설일용직이나 창출하는 게 과연 합리적인 선택일까?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는 도대체 그의 독단을, 이 주책을 막을 길이 없다.


디지털 시대의 개도국 구호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이미 한국사회는 산업사회를 넘어 산업이후사회(post-industrial society), 즉 정보사회로 진화했다. 한국경제 역시 산업혁명을 넘어 과학기술혁명의 단계로 접어든 지 오래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는 나 역시 누구 못지않게 비판적이나, 적어도 이 두 정권은 MB처럼 시대착오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대중 정권은 '지식기반사회'를 얘기했고, 노무현 정권은 'IT와 인터넷'을 좋아했다. 적어도 이 두 정권은 '미래의 경제에서는 상품이 물질이 아니라 정보(지식)의 형태를 취할 것이며, 공작기계보다는 컴퓨터가 생산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라는 인식 정도는 갖고 있었다.


MB는 어떤가? 정권을 잡자마자 '과학기술부'부터 없앴다. 생산이 주로 과학기술혁명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내린 이 용감한 결단. IT에 대해서는 또 뭐라 했던가? 생산이 비(非)물질화되어가는 시대에 이르기를, 'IT는 고용을 창출하지 못한다.' 대체 그가 생각하는 고용은 뭘까? 대답은 '젊은이들은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람 쐴 생각 말고 땡볕에 나가 일하라'는 그의 말 속에 들어 있다. 한마디로, '정보화 사회의 젊은이들이여, 컴퓨터 앞을 떠나 땡볕 아래 열심히 삽질하라'는 얘기다. 그러다 경제위기 속에 IT가 효자노릇 한다고 하자, 부랴부랴 청와대에 'IT 특보'를 만들란다.


'닌텐도'가 돈 된다는 얘기를 들었나 보다. "우리도 이런 거 못 만드나?" MB의 발언은 수많은 누리꾼들의 비웃음을 사며 패러디의 소재가 됐다. 그리하여 나온 것이 '명텐도'. 용량은 2MB, 괄호 치고 확장불가란다. 게임기의 물리적 몸체야 만들기야 뭐 어렵겠는가?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닌텐도 'wii'가 나오기까지 행해진 미디어예술의 수많은 인터페이스 실험, '닌텐도 체어'나 '닌텐도 글러브'와 같은 선행주자들의 실패 및 그 원인에 대한 분석, 게임기에 제공되어야 할 다양한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등등. 생산의 비(非)물질화라는 현실 앞에서 의심 많은 도마는 눈에 뵈지 않는 것의 가치를 믿지 못한다.


직접 프로그래밍을 했던 노무현은 전자정부를 실현했으나, MB 각하는 청와대에 입성하여 보름 동안 컴퓨터를 못 썼다. 이를 비꼬아 "각하, 혹시 전원은 올리셨는지요?"라고 농담을 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농담이 아니었다. 비번을 몰랐다나, 아니면 잘못됐다나? 이 해프닝은 그 후에 벌어질 모든 일을 압축적으로 예시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말한다. 그 말은 역설적이게도 사실이 되었다. 지난 10년 간 이 사회가 이룩한 지식기반사회와 디지털전자정부의 기틀은 단 1년 반 사이에 무너져 내리고, 대한민국은 졸지에 중국의 뒤를 좇아가는 개발도상국과 비슷해졌다.


'7%' 운운할 때부터 예견됐다. 중국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IT 강국의 대통령이 개발도상국 구호('고도성장')로 당선됐다. 표 한 번 잘못 던진 대가로 이제 우리는 22조의 어마어마한 혈세를 들여 대규모 삽질을 해야 한다. 다음 달부터 벌써 보상금이 나간단다. 디지털 시대에 22조가 넘은 혈세를 강바닥 헤집어 환경파괴하는 데에 써야 할까? 미래의 비전에 기초해 '경제를 살리는 것'과, 과거의 경험에 기초해 토목으로 '경기 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용량 2MB짜리 빈곤한 상상력의 감옥에 갇혀 미래의 비전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권위주의 통치로 퇴행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제관념은 정치관념을 규정하기 마련. 박정희 시절 학교에서 우리는 '3권분립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몽테스키외의 이론을 배우다 말고, '그래도 행정부가 제일 중요하다'는 수정이론을 배웠다. 우리의 재판 박정희도 저 혼자 나라를 좌지우지하려 한다. 혹자는 그것을 '독재'라 부르고, 혹자는 그것을 '독선'이라 부른다. 물론 박정희와 이명박 사이에 한 가지 차이는 있다. 박정희가 사회에 군대식 위계를 심었다면, MB는 무차별적으로 사회에 기업식 위계를 도입한다는 점. '대통령=장군, 국민=졸병'이던 시대는 '대통령=사장, 국민=사원'인 시대로 부활했다.


독주의 또 다른 원인은, 그가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MB는 자신을 '여의도 정치인'이 아니라 '현대건설 CEO'로 연출하여 대통령이 됐다. 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은 이 정치인 아닌 정치인에게 몰표를 던졌다. 하지만 기업과 국가는 애초에 성격이 다르다. 회장은 사원이 뽑는 게 아니고, 회사에 의회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인 MB는 정치를 모른다. 그건 자기도 인정한다. 7대 종단의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말하기를, "저는 정치에는 소질이 없고 잘 모른다." ('MB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한겨레21> 06/12) 한나라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을 지냈던 윤여준 전 장관의 증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정당 정치의 기본적인 역할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정치를 혐오한다'는 말만 자꾸 했는데 결국 '나는 여의도 정치가 싫다'는 것 … 대통령이 된 후에는 정당 정치에 관심 갖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윤여준, MB 정치 혐오해' 프레시안 2009/06/12)


아마 그의 눈에 정치인은 기업인에게 돈이나 '삥 뜯는' 기생충으로 보일 게다. 그러니 정치를 혐오하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도 정치인이다. 그리고 기업활동과 정치활동은 애초에 성격이 다르다.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하나의 이해집단을 끌어가는 문제지만, 정치를 한다는 것은 상이한 이해집단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이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는 사람의 눈에는 이런 복잡한 조정과 타협의 프로세스가 그저 순수한 시간 낭비, 비생산과 비효율의 상징으로 보일 것이다.


기업 최고경영자 출신 대통령에게 만나기만 하면 치고받는 정치는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그래서 가까이 할 필요가 없는 남의 나라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청와대와 여당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멀고 먼 당신이 돼 버렸다. ('준비 안 된 권력이동' <한국경제> 2009/06/14)


국회는 명색이 민의의 전당, 즉 국민의 뜻을 대의하는 곳이나, 대한민국을 주식회사로 착각하는 대통령은 국회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에게 입법부의 이상적 상태는 역시 '닥치고 통법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던가? 이상득을 통해 여당을 친위대로 만들어 놓고, 그들의 수적 우위로 야당을 무력화시킨다. 이로써 의회정치는 무력화된다. 주식회사 MB에 의사당은 있어도 의회는 없다. 국민은 그를 대통령으로 세웠으나, 일단 뽑힌 그를 다시 견제할 방법은 없다. 입이 막힌 시민은 뒤늦게 분노해 광장으로 향하나, 그곳은 이미 경찰버스로 막혀 있다.


법치로 법치를 무너뜨리다


지난 5월 30일 오후 '노동탄압분쇄·민중생존권·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공동행동'이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개최하려는 범국민대회를 경찰이 원천봉쇄한 가운데, 덕수궁 주위에 모인 시민들 일부가 서울광장 진출을 시도하자 경찰들이 방패를 옆으로 세우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 권우성

언뜻 보면 MB정권만큼 법을 존중(?)하는 정부는 없었던 것 같다.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가 그놈의 '법치, 법치, 법치.' 누가 MB 정권 아니랄까봐, 우리가 법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도 매우 독특하다. 국민이 법을 지키면 GDP가 0.9%가 성장한다나? 그렇다면 '떼법' 청산하겠다며 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지난 1년 동안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는 얼마나 발전했을까? 법조인들의 말을 들어 보자. 얼마 전 <법률신문>에는 법률 전문가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거기에 따르면 이렇다.


"변호사와 법학교수 등 법률가 10명 중 6명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법치주의가 이전보다 후퇴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정도 발전했다는 견해는 1명꼴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참여정부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법치주의 확립을 국정지표로 삼고 있음에도 정권 출범 직후부터 계속된 촛불집회를 둘러싼 논란과 미네르바 사건, 신영철 대법관 재판 관여 의혹사건 등이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새 정부 출범 후 법치주의 후퇴' 법률신문 2009/04/28)


법률가들은 법치주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정·재계 인사 등 사회지도층의 반(反)법치주의적 행태"를 꼽았다. 정부의 이른바 '떼법' 청산 캠페인("법질서 바로세우기 운동")에 법률가들은 5점 만점에 1.84점을 매겼다. 나아가 '새 정부 집권 5년 동안 법치주의가 어느 정도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45.6%가 퇴보할 것, 34.8%가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답해, 10명 중 8명이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난무하는 법 속에서 정작 법치주의는 후퇴했다는 이 역설. 법치주의 확립을 국정지표로 내세운 정권에서 법치주의 앞날이 암담하다는 이 역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법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ce)가 그동안 손에 든 저울(=공정함)은 내팽개치고, 덩덩 덩더쿵, 시퍼런 칼을 휘둘러 애먼 사람들을 잡는 선무당이 되어버렸다는 얘기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동안 검찰과 사법부가 정치적 중립성을 잃어버리고,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는 얘기다.


"응답자들은 '사법권 독립이 강화됐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40.7%가 많이 약화됐다, 17.4%가 약간 약화됐다고 답했다. 10명 중 6명가량이 이전 정부에 비해 사법권 독립이 후퇴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 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향상됐다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53.0%가 많이 후퇴했다고 답했고, 13.3%가 약간 후퇴했다고 답해 전체의 66.3%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법의 날 기념 설문조사 분석' <법률신문> 2009/04/28)


그동안 일어날 일을 복기해 보자. 사법부에서는 대법관이 재판에 관여하여 판사들의 집단반발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신영철 대법관은 사퇴 요구를 받았다. 검찰은 어떤가? 정치적 보복수사로 전직 대통령을 비극적인 자살로 몰아갔다. 그 사건으로 임채진 검찰총장이 옷을 벗었다. 그에 앞서 경찰의 무리수가 있었다. 경찰은 상식을 넘어선 무리한 진압으로 용산 철거민 다섯 명을 화염으로 몰아넣었다. 이 사건으로 김석기 경찰총장이 물러났다. 단 몇 달 사이에 경찰, 검찰, 사법부에 골고루 유고가 생겼다. 이 세 사건은 물론 하나의 동일한 원인을 갖는다.


MB 정권이 말하는 '법치'는, 법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적용으로 애먼 시민을 범법자 만드는 능력을 과시하는 데에 있다. 법은 난무해도 법치가 후퇴한 것은 이 때문이다.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법을 새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없던 법이 새로 생기다 보니, 시민은 경찰이나 검찰의 연락을 받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범법을 했는지를 알게 된다. 경찰과 검찰이 행사하는 이 사실상의 입법권이 시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 종잡을 수 없는 자의성 앞에서 시민은 법을 '방패'가 아니라, '흉기'로 느끼게 된다. 국민들은 MB 정권에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복수의 칼, 감사와 세무조사


유고가 생긴 곳이 또 있다. 바로 국세청이다. 연임을 앞두고 재계 600위권의 회사를 몇 달 동안 털어 MB에게 직보했다는 한상렬 국세청장은 수사가 시작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 덕분에 국세청장의 자리가 6개월 동안 비어 있는 웃지 못 할 사태가 벌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찾던 삼계탕집이 세무조사에 걸려 10억 원을 추징당했단다. 국세청이 시민사회를 타깃으로 삼는다면, 공공기관의 장악에는 감사가 제격이다. 특히 문화계에서 이른 좌파인사들을 적출하는 데에는 감사가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최근 사회를 시끄럽게 한 한예종 사태는 그것의 완성판이라 할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MB 정권 출범 이후 "수사기관의 계좌 추적 등 금융정보 요구 건수가 참여정부 때보다 3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민주당 정치보복진상규명특위(위원장 박주선)가 12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08년 수사기관이 요구한 금융거래 정보는 8만683건으로, 참여정부 5년 동안의 연평균인 3만340건보다 2.7배 높았다. 올해는 1~3월 석 달 동안에만 6만4721건에 이르렀다. 이는 2003~2007년 동안의 석 달 평균치인 7585건에 견줘 무려 8.5배 이상 많은 수치다. 감사원의 자료 요구 건수도 부쩍 늘었다. 참여정부의 연평균치가 50건이었던 데 비해 2008년엔 358건으로 7배 이상 늘었다. 국세청의 경우엔 참여정부 평균 1만4903건에서 2008년엔 2만9261건으로 갑절 증가했으며, 올해 석 달치는 1만8888건으로 참여정부 시절 3726건보다 5배나 높다." (<한겨레신문> 2009/06/12)


MB 정권 하에서 감사가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 역설적으로, 이는 MB정권의 수렵견들이 누구보다 더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도를 애써 감추지 않고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1차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가 종료되었기 때문에, 시민을 위한 변호사들 측과 상의를 하여, 우선적으로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하고, 감사원이 직접 황지우, 진중권 등을 고발하도록 요청할 것이다." (빅뉴스 2009/05/21) / "고로 문화미래포럼과 별도로 인미협 차원에서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하여 대대적인 감사를 하도록 할 것이다." (빅뉴스 2009/05/25) / 인미협은 일단 문화체육관광부의 부실한 감사결과는 제쳐놓고,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하여, 거기서 비리가 확인되면 그때 검찰 고발할 것이다. (빅뉴스 2009/06/10)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이 프로세스에 따르면, 감사 뒤에는 검찰의 수사가 따르게 되어 있다. 법이 난무해도 법치주의가 후퇴하는 이유를 여기서 볼 수 있다.


21세기 디지털시대를 토목 마인드로 이끌어가려는 우리의 재판 박정희에게, 입법부의 이상적 상태는 '거수기'가 되는 것이고, 사법부의 이상적 상태는 '선무당'이 되는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권력은 당연히 3공과 5공 시절처럼 자신을 지탱해줄 유일한 보루로서 경찰과 검찰의 칼에 의존하게 된다. 물적 토대('경제')에 대한 퇴행적 관념은 이렇게 법적, 정치적 상부구조(입법과 사법)에 대한 퇴행적 관념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구성체는 MB 정권 1년 반 만에 총체적인 퇴행성 발달장애에 걸렸다.


(계속 이어집니다.)


by 부활 | 2009/06/18 15:05 | 미디어 | 트랙백 | 덧글(0)

좌-우 갈등, 바로 그들이 노리는 것!

좌-우를 논할때가 아닌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워야 할 때

빨간색 팬티를 입은 A씨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명동에 나갔다. 파란색 팬티를 입은 B씨는 연인과 명동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주변에서는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의 촛불 시위가 있었다. 경찰은 명동 거리를 걷고 있던 A씨와 B씨, 두 사람 모두를 연행했다.

여기서 질문. 왜 경찰은 두 사람을 붙잡았을까? 두 사람의 같은 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인가? 정답은 의외로 쉽다. 두 사람 모두 노란색 옷을 입고 있었기에 붙잡혔다는 것이 같은 점, 속옷의 색깔이 다르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뻔 한 질문에 뻔 한 답. 그러나 빨간 팬티, 파란 팬티 이야기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 예이다.

당신이 빨간 팬티를 입었든 파란 팬티를 입었든, 좌파든 우파든, 있는 놈이든 없는 놈이든 언제든지 국가 권력에 의해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잡힌 이후 좌-우에 따라 있고-없음에 따라 법의 처분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물론 이 역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위배되지만 현재 법질서가 무너진 대한민국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내가 누구든지 국가 권력의 희생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대한민국을 돌아보면 좌파, 우파 가릴 것 없이 민주주의의 기본권이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 촛불만 들었을 뿐인데, 시위대와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다. 경찰이 막은 지하철 역을 빠져나가려는 행동은 되레 경찰의 곤봉 세례를 부른다. 애-어른도, 남-녀도, 좌-우도 없다. 국가 권력이 마음대로 정해놓은 통제선을 벗어나면 권력으로부터 린치를 받거나 철창행이다. 명백한 표현의 자유 침해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이렇게 통제받고 있는데 언론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는 말 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좌-우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 좌-우를 가르고 갈등을 부채질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피로감을 높여 정치에 대한 무관심만 커질 뿐이다. 사회 갈등과 정치 무관심은 이 틈을 이용해 정권의 재창출 하려는 정권의 추악한 노림수다.

정신 차리자. 지금 좌-우를 논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인간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가 억압받고 있다. 민주주의의 토대가 붕괴되고 있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논할 때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추악한 국가 권력과 싸울 때다.

by 부활 | 2009/06/04 17:40 | 낙서판 | 트랙백 | 덧글(3)

영화 ‘노무현 죽이기’는 누구 작품?

주연 : 검찰, 감독 : 정부&여당, 배급 : 조중동



 노무현 전 대통령을 누가 죽였나?

 ‘노무현 죽이기’라는 영화는 검찰 주연, 조중동 배급, 정부&여당의 감독으로 만들어졌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엉이 바위에서 떠민 장본인이다. 영화 ‘노무현 죽이기’ 주연은 바로 검찰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초유의 일이었다. 검찰이 지금까지 대통령 아니 정치인에 대한 수사 가운데 온 가족이 소환 된 적은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 노무현 본인, 영부인 권양숙 여사, 아들 건호, 딸 정연, 형님 건평, 심지어 조카사위 연철호까지 한 집안 식구가 모두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당사자는 이성을 찾을 수 있었을까. 사람 아끼기를 끔찍하게 생각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왼팔 오른팔, 오랜 친구, 후원자들이 줄줄이 검찰에 구속되는 상황에 이미 피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아내, 피붙이까지 검찰에 소환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본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을 부엉이 바위의 끝까지 몰아세운 것을 바로 검찰이었다. ‘노무현 죽이기’의 주연은 검찰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초기 ‘검찰과의 대화’를 기억하는가. 한 나라의 대통령도 앞에서도 절대 흔들림이 없던 검찰의 보부도 당당한 모습을.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검찰이 이번 정부 들어 철저하게 권력의 개가 되는 모습을 두 눈 똑똑히 지켜보았다. 이런 검찰을 두고 ‘개과천선[개꽈 천선]’이라고 하는가. 검찰은 대통령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당신을 절대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소. 당신 같은 사람은 나랏님으로 절대 모실 수 없소’라는 태도를 보였다. 검찰은 그렇게 대통령 임기 5년을 기다렸다. 칼집만 만지작거리던 검찰, 주인님의 부름에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전가의 보도를 휘두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죽은 권력이 되자마자. 죽은 권력에 휘두르는 잔악한 칼질. 검찰, 당신들 주연의 B급 영화 ‘노무현 죽이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의 꽃은 감독이다. 장동건, 원빈, 송강호, 안성기, 김태희, 김희선, 심은하, 전도연 등등 당대 최고의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죄다 등장하는 영화라고 흥행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왕의 남자가 그랬고, 괴물이 그랬듯이 작품성과 함께 감독의 역량이 영화의 흥행여부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의 속을 좀 들여다 보자.

 ‘집권 1년이 지났는데 지지율은 오를 기미가 안 보이고, 관객들의 불만은 점점 높아지고, 도랑 하나 만들려고 해도 쌍심지를 켜고 지랄들이니, 시선 돌릴 영화를 만들긴 해야겠는데...뭐가 좋을까. 그래! 노무현 죽이기’

 정부 여당 입장에서 영화 만들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었을 것. 정치자금 관련 시나리오는 과거에도 충분히 써 봤겠다,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주연(검찰) 있겠다, 시장 점유율 70%에 가까운 배급사(조중동) 있겠다. 대충 영화입네 흉내만 내면 중박은 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더구나 그 대상이 봉화에 있는 촌놈, 죽은 권력이었느니 오죽이나 쉬워보였겠는가.

 영화야 쪽박만 차지 않을 정도로 관객이 관심 가져주면 그만이고, 관객들이 개봉영화에 관심 둔 사이 운하도 좀 파고, 챙길 것 좀 챙기면 본전은 충분히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긴 거기서 더한 쪽박을 찰 상황도 아니었으니 오히려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결과는 자신들도 감당 못 할 정도의 대박. 시장 지배력 높은 배급사 덕분에 중박 정도는 쳤으니 본전은 뽑았고, 눈엣 가시였던 비운의 주인공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자신들이 원했던 목표는 120% 달성한 것 아닌가. 불만 많던 관객들은 찍소리 못하게 재갈물리면 되고, 북 측에서는 때 맞춰 ‘미사일 신드롬’ 영화 개봉해 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요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든든한 배급사를 확보하는 일. 특히나 작품성 떨어지고 흥행 가능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영화라면 배급사의 역할 필요성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검찰과 정부여당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작품성, 예술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영화가 중박 이상의 흥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조중동’이 물불을 안 가리고 영화 포스터를 붙여댔기 때문이다. 보이는 곳마다 ‘노무현 죽일 놈’이라고 쓴 영화 포스터를 붙여댔으니 그걸 보는 사람은 노무현이 진짜 죽일 놈으로 생각할 수 밖에. 죽일 놈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믿어 왔던 그런 사람은 아니었군’이라고 생각 했을지 모른다. 문제는 당사자에게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의 치욕감을 주었다는 것. 다시 한번 ‘생각대로 하면 되는’ 조중동의 무서움에 떨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의 경우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수구 꼴통 신문사 외에도 기타 언론사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었지만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찰의 칼에서 피를 받아먹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객석 점유율 100%의 영화는 ‘노무현 죽이기’ 외에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몇 년 전 대전에서 작지만 큰 사건이 있었다. 하루 아침에 대전 전 지역에 ‘임팩트’라는 세 글자만 찍힌 붉은 색의 벽보가 나 붙었던 것. 일종의 티저 광고일텐데, 총 100만장의 벽보가 붙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임팩트가 뭐야”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3개월 만에 대전 나이트클럽은 ‘임팩트’가 접수했다. 나이트클럽에서는 불법광고를 붙였다는 이유로 몇 백만원의 과태료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지. 임팩트 사장은 과태료라도 냈지만 조중동은 아직도 자신들이 잘 못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책임을 묻지도 않으니 앞으로 이런 일을 더 저지르고도 남는다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영화 한편, 바로 ‘노무현 죽이기’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5년간 복수심을 불태웠던 검찰과 조중동, 정부․여당이 만들어낸 B급 영화 ‘노무현 죽이기’의 실체다.

 촌에서 농사나 짓겠다던 사람 억지로 끌어내 발가 벗겨놓고 얼굴 빨개지는 모습 보니 기분이 좋던가. 눈엣 가시였던 사람 힘 빠진 뒤에 상투 잡혀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 보니 속 시원하던가.

 기억하겠다. 당신들이 2009년 어떤 짓을 했는지.

 두고 보겠다. 3년 반 뒤 당신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by 부활 | 2009/05/28 11:03 | 미디어 | 트랙백 | 덧글(0)

염치가 노무현 대통령을 죽였다.

염치[廉恥] [명사]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염치. 노무현 대통령 당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당신은 너무나 염치 있어, 염치가 넘치시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염치 없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당신보다 더 심한 일을 저지르고도 두 눈 퍼렇게 뜨고 살아가는데, 그 사람에 머리 조아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신은 염치 때문에 목숨을 저버리셨단 말씀이십니까.

 

 한 나라를 다스리겠다면서 백성의 소리에는 귀를 닫고, 자신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백성에게 물 대포, 곤봉을 무자비하게 흔드는, 입만 열면 거짓과 위선으로 포장한, 자신이 거짓과 위선의 상징인 것조차 모르고 있는 나랏 님이 안 보이십니까.

 

 총칼로 무고한 백성을 무자비하게 도륙하고도, 전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면서 호화 여행과 골프를 치러 다니는 철면피가 안 보이십니까.

 

 수 천 금을 받고도 자신들은 잘 못한 것이 없다며 백성들에게 되레 호통치는 저 금수들이 안 보이십니까.

 

 제 이익을 위해서라면 원칙도 소신, 인간이라는 틀마저도 헌 짚신처럼 버릴 각오가 돼 있는 저 미물들이 안 보이십니까.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대신 썩어빠진 나랏 님 앞에 꼬리를 살랑거리는, 백성은 짓 밟고 권력의 시녀임을 자청하는 저 개들이 안 보이십니까.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당신의 죽음은 마땅한 일이라고 발악질해대는 구린내 나는 주둥이들이 안 보이십니까.

 

 이 염치 없는 인간들이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당신의 등을 떠밀었다는 것을 모르셨습니까.

 

 무궁소불위(窮無所不爲)라, 사람이 살기 어려우면 예의나 염치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건만 당신은 마지막 염치를 지키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안 사람과 자녀들의 작은 부끄러움이 그렇게 견디기 힘드셨는지요. 잠시 눈 감고 견디었으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를 염치 때문에 버티기 힘드셨는지요.


 당신이 꿈꾸었던 ‘사람 살기 좋은 세상’도 당신이 차린 염치 앞에서 무릎이 맥없이 꺾어졌습니다.

저 많은 백성들의 희망이 날아갔습니다. 염치가 당신의 목숨보다, 만 백성의 희망보다 더 귀했단 말씀입니까. 애통합니다. 원통합니다. 염치와 바꾼 당신의 목숨, 당신의 숭고한 정신, 수 천만 백성의 희망...

 

 당신의 염치 있는 죽음으로, 도덕성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며 인간에게 절대적인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셨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염치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뼈 속 깊이 새겨 놓을 것입니다.
 
 편안히 잠드소서. 당신과 당신의 염치,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by 부활 | 2009/05/26 17:44 | 미디어 | 트랙백 | 덧글(0)

하워드 라인골드 '참여군중'의 저자

기조연설] '참여군중'과 미디어2.0: 한국의 '촛불'들에게
하워드 라인골드, <참여군중>의 저자
08.06.27 09:56 ㅣ최종 업데이트 08.06.30 17:32 오마이뉴스 (news)
6월 27일 열리는 제4회 세계시민기자 포럼 기조연설을 한 <참여군중>의 저자인 하워드 라인골드의 연설문입니다.  <편집자주>
  
28일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08 세계시민기자포럼에서 '참여군중(Smart Mobs)'의 저자 하워드 라인골드가 영상을 통해 참여군중과 미디어 2.0 (Smart Mobs and Media 2.0)이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 남소연
하워드 라인골드

안녕하세요. 미국 북 캘리포니아에 살고있는 하워드 라인골드입니다.

 

이 기회를 빌어 기술력, 조직력, 그리고 정치적 표현을 하나로 응집해 매우 흥미로운 가두 시위에 참여하고 계신 한국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우선 여러분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한국은 기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더 많은 시민을 참여시킴으로써 어떻게 민주주의 형태를 진화시킬 수 있는지 전 세계에 보여줄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질문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참여 군중이 단순한 군중이 아닌 현명한 군중이 되도록 할 수 있을까?

 

그럼, 지금부터 답을 해보겠습니다. 그전에 제 소개부터 간략히 하고 시작하죠. 현재 저는 스탠퍼드 대학과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지만, 저 또한 수년 동안 온라인 활동에 참가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관찰자 입장에서 여러 권의 책도 집필했습니다. 창업도 했습니다.

 

이곳 미국에서 베트남전에 반대하며 가두 시위가 한창이던 1960년대에는 정치 활동가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보기에 여러분은 지금 시민 저널리즘뿐 아니라 민주주의에서 참여 군중의 진화라는 측면에서도 아주 중요한 시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에서 참여 군중의 진화

 

여러분 중 상당수가 아마 2002년에 출간된 제 책을 이미 읽으셨으리라 생각되지만, 아직 읽을 기회가 없었던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배경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2000년과 2001년, 저는 지구 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마닐라에서는 시민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정권 퇴진 운동을 조직했고 인터넷에서는 다수의 네티즌들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위키피디아를 통해 지식이 창조되고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통해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협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과학자들이 부르는 집단행동, 즉, 함께 하는 활동에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연구를 통해 인류 발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매 순간 언어이든, 알파벳이든, 인쇄물이든, 또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이든 매체에 상관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기술이 있고 인류는 이런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을 개발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함께 활동하기 위해 미디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냅니다.

 

과학, 기술, 민주주의, 지식.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이 많은 요소를 진정 가능하게 한 것은 인쇄물과 인터넷을 탄생시킨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과 이에 기반한 집단행동입니다. 우리는 현재 인터넷, PC,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휴대 전화가 새로운 매체로 융합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융합의 태동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제 책이 한국어로 출간되었을 무렵 한국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선거를 둘러싸고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 글이 선거의 방향을 결정한 막바지 투표 참여 캠페인의 예로 인용되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편, 그 이후 마드리드에서는 폭탄 테러가 일어났고 스페인 정부는 이 사건이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시민들은 정부의 주장을 믿지 않았고 대규모 시위를 벌여 다시 한번 선거의 방향을 바꾸어놓았습니다.

 

필리핀, 한국, 그리고 스페인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에서 국가수반은 말 그대로 국가수반에 머물렀습니다. 대규모 군중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조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이는 이제 그들에게 가용하게 된 언론을 활용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저는 미국, 아프리카, 아시아, 중국, 그리고 한국 등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과정에서 한가지 공통 주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로 강력한 대규모 집회는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실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은 정부가 자신을 기만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정부가 자신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로 표출된 시위는 영향을 미쳤습니다.

 

단순한 군중 규합 아닌 진정한 시위와 저항으로

 

  
28일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08 세계시민기자포럼 참석자들이 '참여군중(Smart Mobs)'의 저자 하워드 라인골드가 영상연설을 시청하고 있다.
ⓒ 남소연
세계시민기자포럼

하지만, 활동가로서의 제 개인적 경험과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뉴스에 비추어볼 때 관련 메커니즘을 발전시켜서 단순히 군중을 규합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의미의 시위와 저항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저널리즘의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저는 오마이뉴스를 시민 저널리즘의 예로 인용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롱테일 시청료 모금 시스템을 통해서 시민들이 자금을 지원할 뿐 아니라 시민 저널리즘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오마이뉴스와 다른 시민 저널리스트들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국민에게 전달할 방법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 잠시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아직 자유 언론과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에 온라인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에 착수할 무렵 저는 <가상 공동체>라는 책을 집필했고 당시 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다른 이들과 의사소통하기 시작하면서 대두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엇인가. 이는 결국 개인의 자유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개인이 더 많은 개인적 자유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전체주의적이거나 권위주의적 정권을 국민에게 강요할 수 있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은 저를 '공공 영역'에 관한 정치 이론으로 이끌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이 이론에 의하면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정보가 양방향으로 흘러야 합니다. 국민은 국가 활동에 대해 정확하고 진실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입안하는 정치인들은 비밀리에 정책을 입안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저널리스트의 소임은 정책 입안가들의 주장을 잘 파악하는 것입니다.

 

정보는 반대 방향으로도 흘러 여론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유 사회의 시민은 충분한 정보, 그리고 좋은 정보를 제공받아야 하고 다른 이들과의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안에 대해 논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 정확히 말하자면 정보에 기반한 의견이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최근의 가두 집회가 하는 기능 중의 하나는 바로 여론을 표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여론을 수렴하고 국민이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게 되어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6.10 항쟁 기념일인 10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일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 행진을 하고 있다.
ⓒ 남소연
100만 촛불대행진

 

진실 규명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선 정보의 정확성에 대해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인터넷은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진 것만큼이나 그에 상응하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은 막대한 양의 정보를 제공해주지만 상당수는 입증되지 않은 정보입니다. 이런저런 루머가 삽시간에 유포됩니다. 미국인들은 대선 기간에 후보자에 대한 허위 정보가 담긴 이메일을 받고 상당수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미국에는 정통 매체, 주류 매체 이외에 정보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단일화된 출처가 없습니다.

 

저널리스트들의 역할은 어떤 뉴스를 접했을 때 출처를 추적해 해당 출처가 정확한지 규명하고 여러 출처를 찾아내 정보의 정합성을 상호 대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전문가를 섭외해야 합니다. 독자적 조사를 수행해야 합니다. 루머가 사실이라면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 반대로 허위 정보라면 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모든 이들이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민 미디어 시대에는 더 많은 사람에게 제도화된 방식으로 더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진실 규명 메커니즘에 대한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증대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한국 정치 전문가는 아닙니다. 현재 한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시위가 한국 정부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결정에 대한 국민의 불만족에 기인한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제 통상 문제 전문가도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대미 정책에 대해 시민들이 상당한 불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정통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국민이 현재 떠도는 루머를 확인할 방법이 있어야 하고 국민은 루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모든 여건이 마련되어있습니다.

 

NGO 활동가들은 오마이뉴스와 기타 언론사에 관심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시민 기자도 있고 편집자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단순한 자발적 시위를 넘어서서 운동을 형성하고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위를 할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아주 간략하게 제 개인적 경험에 대해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를 포함해 1960년대 젊은 세대들은 정부 정책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미국 곳곳에서 가두 시위와 폭력 시위를 벌였습니다. 특히 대선과 관련해 민주당은 혼란에 빠졌고 젊은 층이 정치에 다시 관심을 보이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당시 우리가 반대했던 정책을 주도한 사람들은 힘의 지렛대를 유리하게 조작할 수 있는 법을 알고 있었고, 어떻게 법안을 입안하고 원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계속해서 정치 활동을 독점했습니다.

 

선거를 위해서는 사람을 동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출 공무원에게 가서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표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을 패배시킬 수 있는 유력 후보에 표를 몰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

 

시위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운동을 형성할 수 있을까요? 시민들 간에 이성적이고 비평적인 토론이 필요합니다. 시민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기타 매체를 통해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오마이뉴스 시민 저널리즘 및 주류 매체등의 뉴스매체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파악해 정책 토론을 펼쳐야 합니다.

 

시민들이 정보에 입각해, 그리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토론할 수 있기 전까지 이들이 조직한 시위는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결국 실패로 끝날 것입니다.

 

장기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민주주의하에서의 정치 도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드린 말씀을 요약해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대다수 국민이 기술 활용 능력을 갖추고 있고 최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이 보장되어, 과거 2002년 대선에서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현재 시민들을 가두 집회에 규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롱테일 지불 시스템과 오마이뉴스와 같은 시민 저널리즘의 대두는 시민들이 저널리즘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요소는 한국을 진정한 선구자요 기술, 정치, 그리고 사회 운동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참여 군중'의 발전을 위한 기반이 가장 잘 마련된 국가로 만들고 있습니다.

 

참여군중을 현명한 군중으로, 어떻게?

 

  
21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촉구 48시간 릴레이 농성 둘째날을 맞아 45차 촛불집중문화제가 예정된 가운데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앞장선 다음 '아고라' 회원들이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아고라

어떻게 하면 참여 군중이 단순한 군중이 아닌 현명한 군중이 되도록 할 수 있을지 그 방안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미국에서는 영국에 대항한 독립 혁명에서 승리하고 독립을 쟁취한 이후 시민들이 어떤 형태의 정부를 구성할지 주장을 펼쳤습니다.

 

현재 미국의 헌법은 두 가지의 공포에 기반해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독재자에 대한 공포입니다. 개인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정부에 대한 공포입니다.

 

이보다는 두 번째 공포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군중에 대한 공포입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예상조차 못 하는, 통제되지 않으며 즉흥적이고 조작될 수도 있는 그룹에 대한 공포입니다. 이들은 창조보다 더 큰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결국, 미국의 민주주의는 독재자에 대한 공포와 군중에 대한 공포 간에 균형을 잡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 동안 전 세계적으로 활동해 온 오늘날의 참여군중은 시민들이 독재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참여 군중이 단순한 군중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미스월드 선발 대회 개최를 둘러싼 유혈 충돌로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덴마크에서는 무하마드 풍자만화로 충돌이 야기되었습니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통해 대규모 시민이 동원되었고 시위는 파괴적이었습니다.

 

호주에서는 백인 인종주의자들이 같은 기술을 사용해 군중을 동원해 해변에서 타 인종에게 구타를 가했습니다.

 

참여 군중이 늘 현명한 군중과 동일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워드 라인골드(Howard Rheingold)

 

하워드 라인골드는 미국 애리조나 출신으로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함의에 관한 연구 분야에서 전세계적인 권위자이다. 지난 20년 이상 그는 세계 곳곳을 방문하여 이 분야의 권위자들과 만나 컴퓨팅 기술의 새로운 조류와 커뮤니케이션, 문화 현상들에 대해 고찰하고 이에 관한 연구서를 집필했다.

 

그는 'HotWired'의 초대 주필을 역임했고, 'The Whole Earth Review', 'The Millennium Whole Earth Catalog'의 편집자로 활동했으며 1995년부터는 인터넷 공동체 'The Well'을 관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가상 공동체(The Virtual Community)>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사고를 위한 도구(Tools for Thought)> 등이 있다. 그의 최신작 'Smart Mobs'는 황금가지에서 <참여군중>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기술 자체만으로는 평화나 민주주의를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활용 능력이 필요합니다. 정보를 갖춘 시민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저널리즘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저널리즘은 국정 운영에 관해 국민이 알 필요가 있는 뉴스를 제공해줍니다. 또한, 여론을 정책 입안가들에게 알림으로써 다수 여론에 반하는 정책을 입안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줍니다.

 

결론적으로 민주주의를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계신 한국의 많은 분들은 이러한 과정의 마지막이 아니라 출발점에 있다는 점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우리의 참여 군중이 단순한 군중이 아닌 현명한 군중이 되도록 전 세계를 이끌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by 부활 | 2009/04/21 11:0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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